네,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현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겪는 가장 깊은 신학적 고민 중 하나이며, 잘못 이해하면 신앙의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문제들을 하나씩, 그리고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 문제 1: "예수님이 타락한 본성을 가졌다면 어떻게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있는가?"
이것은 '타락한 본성(fallen nature)'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려하시는 성도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만약 '타락한 본성'이 '죄를 지으려는 성향(propensity to sin)'이나 '본질적으로 죄된 상태'를 의미한다면, 그분은 당연히 우리의 구세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엘렌 화잇이 이 용어를 사용할 때, 그녀가 의미한 바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명확히 구분해서 설명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핵심입니다.
#### **'타락한 본성'의 올바른 의미 (엘렌 화잇의 관점)**
엘렌 화잇의 글에서 '타락한 본성'은 다음 두 가지로 명확히 구분됩니다.
1. **예수님께서 취하지 *않으신* 것:**
* **죄의 성향 (Propensity to sin):** 예수님은 죄를 지으려는 경향이나 성향을 조금도 갖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본성은 순결하고 거룩했습니다.
* **타락한 품성 (Fallen character):** 그분은 죄로 인해 부패한 품성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 **결정적 증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개인적으로 죄의 성향을 갖지 않으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 그분은 우리의 구주이시다. ... **그분에게는 죄나 죄의 성향이 한 점도 없었다.**" (The SDA Bible Commentary, vol. 5, p. 1128)
> "그는 유혹을 받을 수는 있었으나 유혹에 굴복하지는 않으셨다. 한 생각으로라도 죄에 물들지 않으셨다." (5T, 422)
2. **예수님께서 실제로 취하신 것:**
* **죄의 결과로 약해진 육체 (Weakened physical nature):** 예수님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강하고 완전한 육체가 아니라, 4천 년간 죄의 결과로 퇴보하고 약해진 인류의 육체를 취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엘렌 화잇이 '타락한 본성'이라고 표현한 핵심입니다.
* **인간의 연약함 (Human infirmities):** 그분은 우리처럼 피곤함, 배고픔, 슬픔, 고통을 느끼셨고, 우리와 똑같은 시험과 유혹에 직면하셨습니다.
> **결정적 증거:**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신 것은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상태가 아니었다. ... **그분은 아담이 죄로 말미암아 사천 년 동안 저주 아래서 약해진 인성을 취하셨다.**" (시대의 소망, 49)
#### **이것이 왜 우리 구원에 필수적인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복음의 심오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 **만약 예수님이 타락 전 아담의 본성을 가졌다면:** 그분의 승리는 우리와는 다른 조건에서의 승리이므로, 우리에게 완전한 모본이나 실제적인 도움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나와는 조건이 다르잖아"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약해진 육체를 가지고 승리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겪는 모든 유혹과 연약함을 아시고, 바로 그 조건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한 승리의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의 완전한 **모본**이 되시며, 우리를 동정하시는 **대제사장**이 되시고(히 4:15), 우리에게 동일한 승리의 능력을 주시는 **구세주**가 되실 수 있습니다.
**설명 요약:**
"성도님께서 우려하시는 것처럼, 만약 예수님이 죄의 성향을 가진 '타락한 본성'을 가지셨다면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엘렌 화잇은 예수님께 죄의 성향이 전혀 없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녀가 말한 '타락한 본성'이란, 죄의 결과로 약해진 우리의 '육체적 조건'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약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승리하셨기에, 우리의 진정한 구세주가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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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 2: "엘렌 화잇의 구원론이 시기별로 변했다면, 그녀는 참 선지자가 아닌가?"
이 주장 역시 엘렌 화잇의 사역 전체를 보지 않고 특정 부분만 볼 때 생길 수 있는 오해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의 구원론은 **모순되거나 변질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심화'되고 '균형'을 찾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그녀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통로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것을 '점진적 계시(Progressive Revelation)'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에 모든 진리를 다 보여주시지 않고, 백성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점진적으로 빛을 비추십니다.
#### **시기별 강조점의 변화와 그 이유**
1. **초기 (1888년 이전):**
* **강조점:** 율법의 중요성, 순종, 계명 준수, 죄를 이기는 삶.
* **시대적 배경:** 당시 교회는 안식일, 성소, 재림 등 중요한 교리들을 정립하던 시기였습니다. 율법 폐기론(antinomianism)의 위험 속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기초'를 놓는 작업이었습니다.
2. **중기 (1888년 미니애폴리스 총회 전후):**
* **강조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Righteousness by Faith).
* **시대적 배경:** 교회가 율법 준수를 강조하다 보니, 자칫 율법주의(legalism)에 빠질 위험이 생겼습니다. 성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았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능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존스와 왜그너를 통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되고, 그분의 능력으로 순종할 수 있다"는 기별을 보내셨습니다. 엘렌 화잇은 이 기별을 "참된 셋째 천사의 기별"이라며 강력하게 지지했습니다. 이것은 기초 위에 '기둥'을 세우는 작업이었습니다.
3. **후기 (1888년 이후):**
* **강조점:** 율법과 은혜의 균형, 그리스도 중심의 삶, 사랑의 관계.
* **시대적 배경:** 그녀의 후기 저서들(시대의 소망, 정로의 계단 등)은 초기와 중기의 메시지를 아름답게 통합합니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랑을 깊이 묵상하게 함으로써, 순종이 율법적 의무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열매임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집을 완성하고 아름답게 '장식'하는 작업과 같습니다.
#### **변화가 아닌, 심화(Deepening)**
훌륭한 교사가 학생의 수준에 맞춰 가르치듯, 하나님께서도 교회의 영적 성장에 맞춰 진리의 빛을 더 밝히 비추신 것입니다.
* 산수(초기)를 가르친 교사가 나중에 대수(중기)를 가르치고, 미적분(후기)을 가르쳤다고 해서 "저 선생님은 말이 바뀐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진리로 인도하는 훌륭한 교사라고 말합니다.
* 초기의 '율법' 메시지와 중기의 '믿음' 메시지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야 하는 진리입니다.
**설명 요약:**
"엘렌 화잇의 글에서 시기별로 강조점이 달라 보이는 것은 그녀가 거짓 선지자라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교회의 필요에 따라 점진적으로 진리의 빛을 더 밝히 비추셨기 때문입니다. 초기에는 율법의 기초를, 중기에는 믿음의 기둥을, 후기에는 이 둘을 통합한 아름다운 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심화'이며, 교회를 온전한 진리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